허풍떠는 인터넷

'허풍떠는 인터넷'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된 책이 있다. 원제는 'Silicon Snake Oil'. 클리포드 스톨이라는 컴퓨터 전문가가 쓴 이 책은 1996년에 국내의 한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다시피 이 책이 출간되었던 1996년(영문판은 95년 출간)은 그야말로 인터넷 열풍이 몰아치던 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하고, 서점가엔 '나만의 홈페이지 만들기' 같은 책이 수북이 쌓여 있었으며, 검색 엔진들이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에게 메일을 보내 '당신 홈페이지가 우수한 홈페이지로 선정됐으니 우리 검색엔진에 함 들러주세요'하고 알리던 시절이었다. MS가 윈도우95를 출시함에 따라 IBM PC를 쓰던 사람들은 오래된 도스를 버리고 윈도우 환경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세상의 출발을 기뻐하고 있었다. 내가 첫 번째 개인 홈페이지를 오픈한 것도 바로 이 시점이었다.

당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텍스트 기반의 머드게임이 유행했고, 인터넷을 기존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인식한 선구자들이 희망적인 이야기를 내놓았다. 개인의 자율성에 기반한 세상, 민주적인 절차를 기반으로 현실 세계의 부조리를 털어낼 수 있는 세상. 이런 세상을 꿈꾸던 선구자들은 '전자 프론티어 재단' 같은 곳을 통해 세상의 변혁을 꿈꾸었다. 닷컴기업의 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다.

이런 세상을 향해 '정신차려라'고 조용히 한 마디 건네는 책이 바로 이 책 '허풍떠는 인터넷'이다. 저자는 주문형 비디오는 실현 불가능한 꿈일 뿐이며, 사람들은 여전히 동네 비디오가게를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디오테이프는 무려 4GB이상의 정보를 담는다'고 말한 그는 사람들이 4GB 짜리 USB메모리를 핸드폰에 매달고 다니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법하다. 이메일은 실제로는 허점 투성이의 결함 덩어리이고, 온라인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아무런 댓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역량있는 사람들은 결코 온라인 글쓰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종류도 한정되어 있고, 더구나 점원에게서 받는 친절함 등의 인간적인 감정이 전혀 없는 곳에서 도대체 누가 물건을 살 것이냐고 일갈하기도 한다.

불과 11년이 지난 지금, 우린 당시 저자의 호언장담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자는 네트웍 기술 전문가이며, 크래커들을 수사하는 팀을 이끌었던 보안 전문가였지만, 미처 한 가지를 깨닫지 못했다. 그것은 인터넷을 구성하는 기술의 발전은 과거의 산업혁명, 철도혁명을 뛰어넘는, 엄청난 속도를 지녔다는 것이다. 접속조차 까다롭고, 팩스보다 빠른 속도를 보장할 수 없던 회선은 불과 10년 만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의 파일을 하드 디스크로 옮기는데에 걸리는 시간보다 인터넷에서 파일을 내려받는 속도가 더 빠른 시대다.

기술의 발전은 주문형 비디오에서 그치지 않고, 보고 싶은 TV프로그램을편한 시간대에 보는 데까지 이동했다. 살 물건이 거의 없을 거라던 온라인 쇼핑몰에는 없는 물건이 없다.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 물리적인 제약으로 판매를 하지 못하던 주변부의 제품들이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는 기회를 얻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른바 '롱테일 경제'다. 점원의 친절함은 느낄 수 없지만,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제품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기술의 거품을 주장하는 데에 있지 않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가 가져올 변혁이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몰아낼까봐 걱정한다.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친필 편지가 주는 친밀감, 점원과의 대화를 통해 얻는 만족감, 침대에 비스듬이 누워 책을 읽는 편안함은 결코 인터넷이 줄 수 없는 가치라고 주장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저자가 그러한 가치들이 잊혀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저자의 우려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목적'으로 삼을 거라는 걱정에 근거하고 있다. 네트웍 기술 전문가였던 그는 대중들이 인터넷의 속성을 잘못 이해하고 오용할 것을 예측했던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그의 지적은 대부분 틀렸다. 닷컴 열풍이 사그라든 이후 진정한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했고, 이는 저자가 지적한 헛점들을 보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감성적인 부분에선 어떨까. 차가운 디지털 세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아날로그의 감성을 잊어버리게 되었을까?

현재로선 이에 대한 대답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한편으론 저자가 우려하던 몰개성, 비인간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론 사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더욱 더 풍성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중의 창조적인 작업은 10년 전보다 수십배 늘어났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블로그로 대표되는 도구를 이용해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저자의 주장과는 달리 많은 전문가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아직은 이들이 실제로 손에 잡히는 댓가를 받는 방법이 다양하지 않으나 분명 앞으로 새로운 방식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결정적으로 2007년이 된 지금 누구도 인터넷을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은 인터넷을 창작과 사업, 생활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인터넷이 종착점이 된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시작으로, 기반으로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도래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환호와 기대감을 담은 낙천적인 관점과 우려 섞인 비판적인 관점이 언제나 있어왔다. 영화관은 비디오를 두려워했고, 비디오는 DVD를 두려워했다. 이제 DVD는 인터넷을 두려워하고 있다. 저작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음반 제작자들은 작곡가들과의 저작권 분쟁을 이겨내고 산업을 발전시켜왔고, 지금은 다시 인터넷을 통한 저작권 분쟁을 겪고 있다. '복제기술'로 인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저자의 예측만은 정확히 맞은 셈이다.(당시엔 아직 넵스터도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 역시 인터넷 진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앞으로 또다시 어떤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결국 '도구'를 만들어낼 뿐이며, 그 도구를 이용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라는 것. 사람들은 새로운 도구를 보다 창조적인 방향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낼 것이며 그 결과 보다 풍성한 삶을 사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이다. 마냥 낙천적인 생각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대중은 스스로 발전적인 방향을 찾아 이동할 거라고 생각한다. 부패했던 천주교를 개혁한 개신교의 종교개혁은 신도들에게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었던가.

by mindfree | 2007/03/01 11:57 | 인터넷 이야기 | 트랙백(3)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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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dventure fo.. at 2007/03/0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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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떠는 인터넷 지금 이 시점에서 몇일 전의 이오공감인 "허풍떠는 인터넷"을 읽으면서 문득, 온라인 매체로서의 '포스트'는 과연 어떠한 힘을 지니는 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나 자신도, 이러저러한 글들을 읽고, 많이 써오기도 했지만 나라는 녀석이 실제로 미치는 힘의 여파란 작아서, "과연 효과가 있을까?" 라고 오히려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타 많은 매체를 접해보면 접해볼 수록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more

Tracked from 밝은 세상 운동본부 at 2007/03/19 09:43
Commented by wenzday at 2007/03/05 12:34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큐브관리자 at 2007/03/05 16:23
인터넷이 앞으로 어떤 형식으로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치 예전에는 지금과 같은 익스플로러를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것처럼..
예측은 어디까지나 예측에 지나지 않을 뿐, 미래의 사람들이 보기엔 참 가증스러운일로 남을게 대부분이죠. 인터넷으로 인한 감성의 변화 걱정도 어쩌면 마찬가질지 모릅니다.(전 아직은 그것을 긍정적이라고만 생각진 않지만)
글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3/05 16:28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DECRO at 2007/03/05 22:31
친필 편지는 쓰는데도 시간 걸리고, 둘 곳도 마땅찮은데다가,
점원들은 불친절 하기만 하고
침대에 비스듬이 누워 노트북을 키는 세상이니깐요.

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amish at 2007/03/06 06:37
이 사람이 '뻐꾸기 알' 로 번역된 실제 네트웤 스파이 물의 주인공이지요.

이 사람 대학원 시험때 질문이 기억나네요.

'하늘은 왜 파란가?'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3/06 09:34
DECRO님/그런 세상이긴 하지요. ^^; 방문 감사드립니다.
amish님/ 네, '뻐꾸기알'의 저자입니다. 당시 유명했던 사건이지요. 근데 그 질문은 도대체.... 뭔가요? -_-a
Commented by Reverend-L at 2007/03/06 10:45
video killed the radio star~ -_-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3/06 12:02
Reverend-L님/ 헛.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4/19 23:23
김현정님/댓글을 보고 행사가 '무료'는 아님을 확인하고 홍보성이 있다고 판단은 했지만 관심이 가는 내용이라 그대로 두었습니다. 어쨌든 요쳥하신 대로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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