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와 디씨 미드갤

나는 몇 가지의 미국 드라마를 즐겨본다. CSI시리즈를 비롯해서. 온라인에서 이 드라마들을 다운받아서 보는 것이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온라인에서 다운받아 보지 않았다면 웨스트윙 DVD 박스세트를 구입하지도 않았을터다. 요기까진 변명이다. CSI 시리즈나 내가 즐겨 보는 다른 시리즈들도 대개 케이블 티비에서 방영하고, 조금만 신경쓴다면 이들 방영 시간을 챙겨 '합법적인' 방법으로 티비를 통해 볼 수도 있다. 다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데에 있는데.

(이 얘길 형한테 했더니, 예약녹화가 되는 비디오를 사라고 하더라. 맞는 말이다. 하나 살 생각이다. 몇 년 전부터 집에서 영화를 볼 때는 오직 DVD로만 보고 있는 탓에 비디오가 없다)

최근 내가 이런 미국 드라마들을 구해보던 통로인 클럽들이 자료실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얼마전부터 저작권자의 요청으로 혹은 국내 DVD가 출시되면 해당 동영상을 삭제하고는 있었는데, 외부 요인으로 이것이 조금 빨라졌다. 이들 클럽들에는 완전히 영어 대사만으로 드라마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나같은 우매한 백성들을 위해 자체 자막을 제작해서 제공하는데, 이 자막들의 수준도 상당히 높다. 자막팀이 구성되어 워낙 체계적으로 번역을 해온 탓에 자막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풍부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들의 노력을 충분히 알기에 자막팀이 내거는 여러 조건들을 이해한다. 클럽 업로드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배포를 허가한다거나, 자막에 대한 수정은 개인적으로 하지 말고 자막팀을 통해서 해달라거나 하는 요청들이다.

그러다가 최근 디씨 미드갤을 통해 몇 편의 자막을 가져다봤다. 미드갤에서 제작된 자막으로 드라마 몇 편을 보니 공통점이 하나 있더라. 앞 부분 자막 제작자 정보에 번역자 이름과 함께 '수정/배포 자유'를 표시해 둔 것이다. 자막 제작자의 이름을 표시해달라는 언급도 없다. 단지 원본 자막의 출처와 자신의 닉네임만 붙어있을 뿐이다.

간단한 영어 문장의 번역이라도 직접 해 본 사람은 안다. 영어-물론 다른 외국어도 마찬가지겠지만-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그냥 뜻을 이해하는 것과, 그걸 한국어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영어로 읽었을 때 대략의 뜻을 파악하더라도 그걸 한국어로 옮기려면 만만치 않은 문장이 수두룩하다. 단어 몇 개로 이루어진 문장이라해도.

얼마 전 CC 자원봉사자 워크샵에서 바로 이런 얘기를 했었다. CC를 표시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지만, 즉 블로그에 CCL을 적용한 곳은 높지만 그것을 이용해 2차 저작물을 만들도록 허용한 비율은 그와 반비례한다고. 여기에 타인이 2차 저작물을 만들만큼의 저작물을 생산해내는 사람들도 소수라는 점이 더해지면 CC를 적용하는 진정한 의의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하려는 얘기의 핵심은 이거다. 블로그에, 까페에, 사진에 CC를 표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CC의 진정한 의미는 라이센스를 표시하는 데에 있다는 게 아니다. CC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더라도, CC 따위는 전혀 관심도 없더라도, 내가 시간을 들여 만든 뭔가를 타인과 아무 조건 없이 공유할 수 있는 것, 그것으로 인해 보다 풍성한 저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CC의 의의다. 블로그 포스트에 폼나게 붙어놓은 CC 마크. 이 수가 늘어남에 따라 정작 그 의미를 놓치고 있는건 아닌지.

덧글; 이 글은 '저작권을 무시하고 모든 걸 공유하자'는 의도가 아님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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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free | 2007/08/07 00:41 | 인터넷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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