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관님, 구직자에 대한 예의도 생각해주세요.

지난 번에 '왜 면접은 달라지지 않을까' 를 통해 면접에 대한 생각들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뒤로 일이 꼬이면서 다시 면접을 보러 다녀야만 하는 처지가 되다보니 또 다시 기가 막힌 면접관을 한 분 만나게 됐다.

발단은 이렇다. 어쩌다보니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하나씩의 면접을 잡게 됐다. 오전 면접을 보러 회사를 찾아갔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여직원 한 명이 입구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 한 뒤 무슨 종이를 가져와서 적으라고 한다. 들여다보니 기본적인 신상 명세와 몇 가지 질문이 적혀 있었다. 적었다. 다음 장을 보니 회사 경력을 적으라고 되어 있었다. 면접관이 보기 위한거란다. 이력서를 보면 될 것을 왜 이러나 싶었지만 일단 적었다.

대략 35분을 기다렸다. 왜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물론 앞선 면접이 길어지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런 상황이 생기면 누군가가 와서 늦어지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한다. '앞 면접이 조금 늦어져서 그러니 양해해 주세요' 하면 내 입장에서도 기분 좋게 기다릴 수 있다.

35분 쯤을 기다린 후 아까 그 여직원이 와서 내가 적은 종이를 가져가더니 돌아와 회의실로 안내한다. 잠시 앉아있으니 면접관이 들어오더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자리에 앉더니 아무 말 없이 내 이력서와 좀 전에 내가 적은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고개를 이력서로 향해 숙인 채 갑자기 대뜸 묻는다. 아직 명함도 건네지 않은 상태다.

"xx대가 4년제에요?"

테이블을 향해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갑자기 물어오니 무슨 말인지 잘 못들었다.

"네?"
"xx대가 4년제에요?"
"네 그렇습니다"

여전히 얼굴은 테이블에 묻고 있다. 볼펜으로 이력서 옆에 '4년제'라고 적는게 보인다. 참고로 내 이력서에는 입학년도와 졸업년도가 나와 있다. 2년제 대학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다녔을리가 없잖아.

그 뒤에도 두어 개 질문을 더 한다. 여전히 머리는 테이블에 묻은 채. 그러더니 이번엔 고개를 들고 질문한다.

"머리는 왜 깎으셨어요?"

난 빡빡머리인 탓에 거의 모든 면접 때마다 이 질문을 받는다. 답변을 듣고는 다시 서류를 들여다보며 얘기한다.

"PT할 때 문제가 좀 있겠네"
"예전엔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앞으론 있을거에요"

허. 산 넘어 산이다. 그게 문제가 있을 거 같으면 왜 불렀나. 이력서에 사진이 없나? 나도 여러 차례 PT를 해 본 경험이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 앞으로도 문제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더니 대뜸 "파일 가져온거 있죠?" 한다. 면접 일자를 정할 때 통화를 한 여직원이 작성한 기획안이나 스토리보드를 가져오라고 했었다. 그래서 USB 메모리스틱을 줬다. 화면에 문서를 차례 차례 열어서 본다. 세 개의 문서를 보는 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 질문도 없다. 이 때까지 나와 눈을 마주친 것은 딱 두 번이다. 회의실에 들어서면서 대충 인사하는 둥 마는 둥 할 때 슬쩍 한 번, 머리 왜 깎았냐고 물을 때 한 번.

그러더니 그 회사에서 만든 제안서를 갑자기 연다. 참고로 벽에 붙은 스크린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런 제안서 만들어봤어요?"

화면에 보여지는 제안서는 엄청나게 복잡하다.

"저 정도로 복잡한 것은 아직 만들어보지 않았습니다만"
"이게 복잡한 건가?"
"지금 저 제안서는 제출용이지요?"
"제출용이죠. 이게 300페이지쯤 되는데... .... 제안서는 많은... 게... 들어가.... 아이디어....."

나한테 하는 얘긴지 혼자 중얼대는 건지 그 제안서가 면접관 본인이 만든 거라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건지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한다. 그 때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말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시선은 노트북 화면에 가 있다.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죄송합니다만, 면접을 여기서 중단하겠습니다" 하고 인사말을 몇 마디 한 뒤 회의실을 나왔다. 나중에 친형의 전화를 받고 '면접 보다 나와버렸다'고 하니 '면접 보다가 나갔다는 얘긴 첨 듣는다'고 한다. 나도 면접 보다가 나와보긴 처음이다.

내가 성급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뒤에 제대로 면접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혹은 면접자리에서 직접 얼굴을 보니 내가 마음에 안 들어 아예 면접을 대충 보기로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구직자들은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구직자들은 직장을 찾는 사람들이다. 면접을 보러 온 상태에서는 어쨌든 그 회사를 방문한 손님이기도 하다. 더구나 경력자라면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따라서 면접은 직원을 채용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회사를 소개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래서 많은 회사들이 구직자에게 회사에 대한 개요를 간략히 설명한다. 언제 생겼고, 뭐 하는 회사고, 조직 구조는 어떻고, 인력 구성은 어떻고, 앞으로 사업은 이렇게 할 계획이라고.

면접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대부분의 면접관들이 구직자와 인사를 하고 나면 자신의 명함을 주며 자신의 소개를 먼저 한다. 대개 이 시점에서 뭐 차라도 한 잔 하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이 면접 같은 경우라면 내가 바깥에서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 예의상 물어보기라도 한다. 회사를 방문한 손님이니까. 여기는 35분을 기다리는 동안 물어보는 사람도 없더라만. 그러고나서 구직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회사에 대한 소개도 한다. 간혹 업계의 동향이나 최근의 트랜드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한다. 오후에 본 면접의 경우엔 한 시간이 넘게 면접을 보면서 최근에 변화하는 웹의 분위기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과정에서 구직자의 성향과 지식 정도, 능력, 업계를 파악하는 정도에 대한 체크도 하게 되는 것이다. 기획자의 경우라면 말솜씨와 토론 능력에 대한 점검도 된다.

그런데. 나하고 눈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나에 대해 뭘 알아보겠다는건가? 면접관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 회사에 대한 기본 정보는 나도 안다. 이력서를 낼지 고민하면서 회사 홈페이지에 나온 정보를 챙겨봤으니까. 낼까 말까 망설이다 '일단 내보고 면접을 보러 오라면 가보기나 하자, 아닌 말고' 하는 심정으로 그냥 낸 것이 후회가 막심했다.

블로그에 쓸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 회사가 나한테 준 피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불성실한 면접관 한 명이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기회까지 날려버리고 말았다.

투덜대다보니 내용이 많이 빗나갔지만 하고픈 말은 이거다. 구직자들에게도 예의를 갖춰달라. 구직자에게 있어 면접은 기회이자, 부담이다. 면접을 즐기는 구직자는 없다. 가능하면 빨리 좋은 회사를 찾아서 일을 하고 싶다. 면접을 제대로 볼 생각이 없다면 애초에 서류전형에서 끝낼 일이지, 왜 굳이 찾아오게 만드냐 이 말이다. 그러지 말자. 면접관님들, 부탁합니다.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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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free | 2007/07/06 16:28 | 인터넷 이야기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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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커리어블로그 at 2007/07/06 17:32
기사에 보니깐 “면접 시 면접관의 태도로 인해 불쾌감을 느낀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설문을 한 결과, 78.1%가 ‘있다’라고 응답했다는데 면접관의 이미지가 기업이미지로 이어진다는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면접자들이 예의를 갖춰 면접에 임해야 하는 것처럼 면접관 역시 자신이 회사를 대표한다는 자세로 행동해야 합니다.
커리어블로그 추천포스트(랜덤)로 등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7/06 18:11
80퍼센트에 가까운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꼈군요.. 심각합니다.
Commented by JoysTiq at 2007/07/06 19:01
저도 면접 보러 다녀야 하는데,
심각하네요. 저 정도입니까.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7/06 20:29
저도 깜짝 놀랐네요.. 저렇게 높은 수치일줄이야. 현실적으로 구직자가 약자일 수밖에 없지만, 구직자이면서 강자가 될 정도로 실력을 쌓는 수밖에 없겠지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7/07 14:43
면접을 할 때 일부러 돋구는 경우도 있습니다. 면접관이 여러명인 경우 한 명이 악역을 맡는 등 롤을 서로 맡지요. 나중에 입사해서 역할을 나눴다는 걸 알게 되고도 좀처럼 마음이 열리거나 편해지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7/07 20:18
호오.. 면접에서도 '굿 캅 배드 캅' 게임을 한단 말이지요? 그건 면접자를 파악하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겠군요.
Commented by 데니 at 2007/07/10 19:38
사람 귀한 줄 모르는 회사군요. 저런 사람으로 인해 회사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인재들을 놓칠 수 있다는 걸 생각도 안하겠지요.
면접관이라고 해서 팔에 무슨 완장이라고 찬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면접 시간동안 회사는 면접자를 평가하지만, 면접자는 면접관을 통해 회사를 평가합니다. 서로 면접을 본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합니다.
혹여 사람이 어떤지 떠보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정말 싸구려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화이팅 하세요. ^^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7/11 22:28
감사합니다. 다행히 옮길 직장을 정해서 출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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