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과 춘화, 그리고 포르노

대략 2년 전 쯤. 미국에 있을 때 이글루에 처음 블로그를 개설했다.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한창 운영하고 있을 때인데,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 놓고 못했기 때문에, 마침 몸도 미국에 있고 해서 돌파구를 찾아 다른 블로그를 개설했던거지. 그 블로그에서는 온통 '+19'에 해당하는 글만 갈겨댔었는데, 오늘 네이버에서 뭔가를 찾다가 우연히 내가 그 시절에 썼던 글을 보게 됐다. 바로 이것.

(네이버에서 '내가 하고싶은 얘기를 마음대로 못한 것'은 그 블로그를 심지어 우리 어머니도 가끔 보셨기 때문이다. 크헉)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기차의 도착'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일반 관객에게 선보인 것이 1895년이다. 흑백 스크린에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나오자, 그 자리에 모여있는 관객들은 실제로 기차가 들어오는줄 알고 혼비백산해서 자리를 뛰쳐나갔다는 일화가 남아있기도 한 역사적인 순간이지. 그 와중에 자신의 여친이나 마누라를 버리고 잽싸게 혼자 토껴서 나중에 두고 두고 씹히느라, 영화라면 기립해 있던 똘똘이가 폭 주저앉을만큼 치를 떤다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법하다. 그 냥반들을 위해 잠시 똘똘이 잡고 묵념. 바로.

'활동사진'이라 불렸던 영화가 발명되면서 이걸 맨 처음으로 밥벌이에 도입해 산업화시킨 사람들이 누구였을까? 정답은, -물론 내 생각이지만- 바로 포르노 제작업자들이다. 포르노의 역사는 한 마디로, 유구하다는 걸 말해준다는 얘기다.

그럼 영화가 발명되기 이전엔 뭘 봤느냐, 에이.. 니들도 잘 알면서 뭘.. 얼마전에 '음란서생'이라는 영화도 나왔잖아. 포르노 영화 이전엔 춘화들이 돌아댕겼다. 암스텔담의 섹스박물관에 가보면 사진이 만들어진 직후에 역시 바로 포르노 사진이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희미하게 퇴색되어가는 흑백의 사진 속에 가슴과 응응을 드러내고 다리를 쫘악 벌린 채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는 처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있었다는 얘기다. 당연히 그걸 보고 '잇힝' 혹은 '으흐흐으' 소리를 내며, 똘똘이를 조물락거리던 넘들도 있었을테고.

혜원 신윤복이라는 걸출한 화가가 있었다. 영화 '취화선'을 본 사람이라면 혹시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극중에서 장승업의 호 '오원'을 짓게 되는 계기로 단원과 혜원의 얘기가 나온다. 단원과 혜원이 있으니 '오원'이라고 호를 지어 '삼원'으로 불리면 어떻겠느냐는거지.  물론 이건 결과적으로 적중해서 지금 이 세 화가를 통칭해 삼원이라 부른다. 단원과 혜원은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 중 은근히 유명한 것이 바로 춘화이다. 혜원의 수많은 춘화들이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채 조용히 묻혀 지내다가, 몇 년전에 드디어 춘화만을 모아 전시를 가졌을만큼 그의 춘화는 종류와 수가 다양하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보자.

도대체 어떻게 이런 춘화와 포르노들이 매체의 발달에 바로 적응해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단지 여자나 남자의 알몸이 궁금해 미칠 지경인 꼬맹이들이 이걸 똘똘이가 벗겨질 지경으로 봐대는 바람에 그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이거지. 왜냐, 예나 지금이나 아직 결혼을 안해서 어떻게든 혼자 지 몸에 붙은 불을 꺼야하는 사람들의 수는 전체 인구에 비례해보면 그다지 많은 수가 아니라는거지. 춘화와 함께 인기를 끌었던 성애소설, 즉 야설의 팬들 중엔 결혼을 한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하지 않았을까. 서로 조물딱거려주고 우싸 우싸할 파트너가 당당히 있는 년놈들이 왜 이걸 봤냐.

요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상상력을 채워주기 위해서였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섹스와 관련된 사람들의 욕구는 단순히 '함 해서, 싸자'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거지. 물론 궁극적으로 요게 비중이 상당히 크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딴 년놈들이 하는 걸 보고 싶은 욕구와 보여주고 싶은 욕구에다가 그걸 상상하고 느끼고 싶어하는 욕구까지 아주 복합적으로 뭉뚱그려져 있는 게 바로 성욕이란 얘기다. 요기다가, 간혹 지배하거나 지배당하고 싶은 욕구도 있다. 아울러 현실적으론 잘 채워지기 힘든 자신의 이상적인 꼴림의 대상을 야설이나 춘화에 오버랩시키거나.

이런 낭만적인 시대는 영화가 등장하면서 한 방에 날아가고 만다. 영화는 실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서, 움직이는 화면을 보여줘서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하게 되는데, 이는 다른 많은 매체와 함께 포르노 역시 즉물적인 것으로 넘어갔다는 걸 뜻한다. 이렇게 제한된 상상력은 포르노 영화를 제작하는 곳과 이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다양해지면서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충족시켜나가고 있다. 바로 '다양화'지. 이 넘이 좋아하는 게 다르고, 저 뇬이 좋아하는 게 다르니 각자의 꼴림을 오르가즘으로 만족시켜주려면 결과적으로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출연진을 개발해야 했다는 얘기다. 살아남기 위해서. 물론 아직까지는 '뇬'보다 '넘'을 위한 포르노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건 여성 동호인들이 좀 더 강한 목소리를 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포르노가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만든다고 우려하는 여자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씰데없는 이유로 포르노를 박멸하려 하지말고, 여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담은 포르노를 만들라. 너무 남자 관객을 대상으로만 포르노를 만드는게 불만이라면 제작자들에게 '여자도 본다고 씨바!'하고 주장을 해야 걔들이 만들어줄거 아닌가. 일부 여성 제작자들이 여성들이 좋아하는 부분에 집중해서 포르노를 만들면 열심히 봐줘야 걔들도 꼴려서 계속 만들거 아냐.

이제 시대는 '사이버 섹스'로 간다고 한다. 보고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느껴버린다는 거지. 뇌에 센서를 연결해서 감촉과 냄새까지 그대로 느낀다면 이건 그야말로 대변혁인데 솔직히 난 이건 그다지 꼴리지 않는다. 역시 섹스는 살아있는 사람과 해야 제 맛이지, 아무리 그 느낌을 그대로 재현해준다해도 실제로 여자와 뼈와 살을 분리해야 할 순간까지 가상 매체가 지배해버린다면 너무 삭막하자나. 근데, 만약에 '한채영과 실제로 하는 것 느낄 수 있는데?' 하고 유혹한다면! 좀전의 내 말은 취소다;;

이 시절에 남긴 포스트가 내 기억으론 대략 십 여개. 네이버 블로그를 닫고 이글루로 돌아와 블로깅을 하면서 이 시절의 글은 모두 지워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남긴 포스트가 정말로 '재미있고 읽힐만한' 것들이 많았는데 후회스럽다. 물론 '온라인 상의 내 이미지'와는 너무 딴판이긴 하다. 왜 그 시절의 포스트들이 재미있었냐면, '힘 빼고 손가락 가는대로' 썼기 때문이지. 욕이 나오면 욕을 갈기고, 비속어가 생각나면 생각나는대로 마구 써대고. 한 마디로 그 당시 포스트의 기준은 딴지일보의 '남로당' 이라 보면 된다. 근데 더욱 재밌는 것은 그 때 정말 즐겨 가던 '레진'님의 블로그(물론 지금도 아주 즐겨간다)에 걸었던 트랙백 때문에 지금도 리퍼러 순위에 레진님의 블로그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는거다. 푸흐흐.. 레진님의 블로그에서 내 블로그로 온 분들의 원성이 귀에 들리는 듯 하다. 그나저나 레진님 아직 이글루스에서 안 자르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하기야, 이글루스 입장에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쨀 수는 없겠지.

'막 나가던' 시절의 포스트. 나도 오랜만에 보니 즐겁다. 이 글을 퍼갔던 분이 '내 블록 요기 카테고리에서 젤 조회수가 많은것' 이라고 하셨는데(조회수가 무려 2000이 넘네그랴. 내 블로그 총 방문자수의 몇 분의 몇이야), 아예 이 길로 나갈걸 그랬다. 그랬으면 딴지 관광청에 취직이 됐었을까?

by mindfree | 2007/06/28 10:30 | 트랙백 | 핑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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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pds/200707/04/01/|left|170|384|pds5#] 왼쪽 이미지는 내 블로그 리퍼러 순위(URL별)를 캡쳐한 이미지다. 놀랍지 않은가? 며칠 전에 예전에 쓴 포스트를 다른 블로그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가져왔었다. 그 뒤에 방문자 수가 늘었는데,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 오직 저 검색어 하나가 그 이유.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꾸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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