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면접은 달라지지 않을까.

관련 포스트 : 인터뷰에서 진실을 들으려면

얼마전부터 이직을 준비중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것이 작년 6월. 돌아와서 직장을 구하려 하다가, 놀다가, 프리랜서 비스무리하게 일도 하다가 올 1월에서야 지금 다니는 직장에 들어갔다. 입사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직을 준비중이냐. 그건 이곳에서 말할 수 없고. 혹시 나중에,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털어놓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직을 하려고 취업 사이트에 이력서를 작성해두고(사실 작성하려고 보니 회원가입이 되어 있었고, 로그인을 해보니 옛날 옛적에 만든 이력서가 있더라), 그걸 공개해 놓았다. 물론 현재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내 이력서를 볼 수 없도록 설정도 해놨다. 이미 퇴직 의사를 밝혔지만 그래도 찜찜하잖아.

몇 차례의 면접을 봤는데, 묘한 것이 내가 이력서를 제출한 곳에서는 단 한 군데 면접 연락이 왔고 나머지는 모두 회사에서 내 이력서를 보고 면접 제의를 해왔다. 그렇다고 면접을 제의해 오는 곳들이 내가 이력서를 제출한 회사들보다 못한 곳들도 아니니. 내가 뭔가 촛점을 잘못 맞추고 있는 걸까?

몇 차례의 면접을 보면서 '애자일 이야기'에서 본 포스트가 떠올랐다. 면접은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지는 법. 안타깝게도 본인의 실력이 많이 모자라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엔 면접을 본 적이 없다. 대기업들은 다른 방법을 사용할지도 모르니 이건 그저 내 경험으로만 국한시켜서 봐주었으면 한다.

결론부터 말해서 내가 신입 디자이너로 입사 면접을 본 몇 군데의 회사에서는 나름대로 면접을 보는 방향을 잡고 있었다. 한 군데서는 A4 종이 하나를 주고 '장애인 복지에 관한 사이트를 만드려 한다. 기획 방향을 자유롭게 적으라'고 했다. 주어진 시간은 대략 30분. 디자이너를 면접하면서도 사이트의 기획 목표를 이해하고 있느냐는 것을 보고 싶었는지, 개인의 아이디어를 보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복합적인 이유였겠지.

그 면접 당일 같이 면접을 본 사람들은 대략 10여 명. 나를 제외하곤 모두 여자에, 경력자들이었다. 실제 업무를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였으나 어쨌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적었지. 결국 대표이사 면접까지는 갔으나 떨어졌다.

그 외 다른 한 군데에서는 디자인된 파일을 하나 주고 html 코딩을 해보라했다. 아마도, 매일경제 신문사의 메인페이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혹시 당시에 그 회사에서 일했거나 그곳과 인연이 있는 분이라면 내가 어느 회사의 면접을 봤는지, 내가 누군지 알지도 모르겠다. 그 곳에서는 채용의사를 밝혔으나, 결국 입사하지 않았다.

첫 회사에서 다음 회사로 옮길 때, 그리고 지금. 꽤 여러 차례의 면접을 봐왔다. 그러나 어느 한 군데도 신입 디자이너로 입사할 때만큼 '성의껏' 면접을 본 곳이 없었다. 내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면접관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위에서 얘기한 두 군데의 회사에서는 내가 작성한 결과물과 그 결과물이 나오던 도중에도 간혹 나에게 와서 질문도 하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혼자 개인 홈페이지나 동아리 홈페이지를 몇 차례 만들어본 것이 전부인 내가 -아무리 99년 말이라 하더라도- 신문사 메인 페이지를 코딩하는 것이 쉬울리 없다. 도저히 이것을 어떻게 짜야할지 막막해하고 있을 때 옆에 와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힌트를 줌으로써 내가 과제를 수행할 방향을 제시해준 셈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바로 그것이 신입 사원이 갖춰야할 '가능성', 즉 선배의 조언과 충고를 받아들여 발전해나갈 여지를 살펴보는 시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의 면접은 어땠던가.

포트폴리오를 펼쳐놓고 대뜸 '설명을 해보라'고 하거나, '디자인이 맡겨지면 어떻게 진행하느냐'는 질문이 고작이다. 단편적인 질문에 단편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가장 인상에 남는 프로젝트는 뭐였나'

'가장 규모가 큰 프로젝트는 뭐였나' '

'작업 목록에 있는 이 사이트들은 기획만 한 것인가 PM역할도 같이 한 것인가'

'그 비율은 어떻게 되나'

이런 질문들을 하나 하나 툭툭 던진다. 나도 하나 하나 툭툭 답한다. 그래서 뭘? 왜 '연속되는' 질문을 하지 않는가?

'사이트 구조 설계를 할 때 어느 것에 주안점을 두느냐'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신은 뭐라고 할까. 나도 웹 사이트 구조 설계나 기획이론 같은 책은 꽤 여러 권 본 사람이다. 현장에서 만들어본 사이트도 수십 개가 넘는다. 이런 질문엔 당연히 정론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고객의 의도를 파악하고, 사용자의 편의를 생각하고, 사용자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등등등.

이런 질문으론 내 개인적인 얘기를 끌어낼 수 없다. 저 정도 질문은 굳이 날 부르지 않고, 내 이력서만으로도 할 수 있잖아. 디자이너로, 기획자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몇 개인데 내가 기본적인 개념도 없을 것 같아 그걸 확인하려는 건가. 그게 의심이 되면 면접 제의를 하지 말았어야지.

'가장 인상에 남는 프로젝트는 뭐였나'는 질문에 내가 체력적으로 한계에 달하는 경험을 했던 프로젝트 이야기를 해줬다. 지금 다시 하라면 짐 싸서 다른 팀원들이 조는 틈을 타 당장 도망갈 프로젝트였다. 새벽에 팀장이 자양강장제를 들고 돌아다니며 팀원들에게 나눠주던 시절이었다.(그거, 효과 있다. 병든 병아리 같던 애들이 약 먹고 얼마 지나면 눈빛이 다시 돌아온다)

나에게서 진실, 내 진짜 경험을 끄집어내려면 저 이야기를 듣고 더 파들어가야 한다. 왜 그렇게 됐느냐,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대안을 세우려 해봤느냐. 왜 그게 안됐느냐. 만약 그런 상황이 지금 다시 생긴다면, 이젠 팀의 중간자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이런 질문을 했어야 한다. 그럼 난 진짜로 내가 생각하는 방향을 자연스럽게 얘기해줬을 거다. 그 단계로 들어가면 막연한 '정론'을 얘기할 수 없다. '애자일 이야기'의 포스트에서처럼 질문자도, 답변자도 유익하고 즐겁다. 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고, 질문자는 나의 마음 속 이야기와 진정한 가능성, 경험을 확인할 수 있다.

왜?

왜?

매번 이런 질문만 하나? 매년 수천 명 면접을 보는 수준이라 척 보면 '앱니다'인가? 나를 면접 본 한 면접관은 작년 한 해에 스물 여섯명의 면접을 봤노라 했다. 그 사람들 모두 나처럼 면접을 진행했겠지. 그래서 어떤 사람을 어떻게 판단해서 뽑았을지 궁금하다.

내가 일하는 분야의 회사들은 이직률이 높다고 불평한다. 그저 일이 힘들어서 그러려니 한다. 과연 그럴까? 과연 일이 힘들어서 그럴까? 일이 힘들어서 나간 사람이 왜 똑같은 업계의 다른 회사를 찾아 들어가는 걸까? 일은 거기서 거긴데?

내가 글을 남기는 이 블로그는 내 이력서에 주소가 기재되어 있다. 나를 뽑고자 했던 회사에서 혹은 내가 면접을 본 회사에서 이 포스트를 보고 건방진 놈이라 생각해서 안뽑을지도 모른다. 왜 면접을 볼 때 그 얘기를 하지 않고 뒷북만 치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면접을 볼 때 이런 얘기까진 할 수 없겠더라고. 면접관의 질문 방식을 그 자리에서 트집 잡을 순 없겠더라고.

집에 와서 '에라' 하는 마음으로 적는다.


by mindfree | 2007/04/16 22:07 | 인터넷 이야기 | 트랙백(1)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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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일상적이며 상대적인 사전 at 2007/04/16 23:23

제목 : 면접에 대처하는 자세
왜 면접은 달라지지 않을까.실제 면접 과정은 어떨까? 물론 실제 겪은 분의 이야기이니까 공감이 간다.아직 면접을 본 적은 없다.. (학교 프로그램 지원 면접 빼고.)학교 프로그램 면접을 볼 때가 생각난다.05년 겨울, 현장실습 프로그램 지원 - 미국 미주리 대학 6주 현장 실습 -사실 2년 정도 되었으니까 무엇을 물어봤는지는 까먹었다.하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왜 현장실습에 지원하게 되었는가?'그리고 '현장실습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more

Linked at Free Mind Free W.. at 2007/07/06 16:28

... 지난 번에 '왜 면접은 달라지지 않을까' 를 통해 면접에 대한 생각들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뒤로 일이 꼬이면서 다시 면접을 보러 다녀야만 하는 처지가 되다보니 또 다시 기가 막힌 면접관을 한 분 만 ... more

Commented by tommi at 2007/04/19 05:28
공감이 가네요.. 면접때 뭘 물어봐야 하는지 중요한게 뭔지 잘 모르는것 같더군요. 젠장 짜증나는 인터뷰 많이 해봤어요.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4/19 14:14
tommi님/제 포스트에 관련글로 검색된 'oojoo'님의 글 제목대로 면접을 보는 경험이 쌓일수록 면접에 대한 회의가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면접관들도 계속 면접 경험이 늘어날텐데 그 분들은 경험치가 쌓이지 않는 걸까요? 저도 나중에 혹시 면접관이 될 상황이 오면 이런 말 듣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겠습니다.
Commented by aliceblue at 2007/04/30 16:23
어쩜 이리 공감가는글이 많은지 --;;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4/30 17:40
aliceblue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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