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보드 제작 -웹 기획자의 역할이란 뭘까 (4)

1. 방송작가를 존경하는 이유
2. 고객과의 접점
3. 작가

난 웹 디자이너로 출발해 기획자로 전향한 경우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보드를 받아보는 입장과 제작하는 두 가지 입장을 모두 경험해봤다. 우선 내가 겪은 -스토리보드와 관련된- 가장 황당한 일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2001년 즈음. 대략 2,30명 정도로 구성된 웹에이전시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모 사단법인에서 자그마한 커뮤니티 사이트 하나를 구축하게 되었고, 내가 담당 디자이너로 배정되었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 해도 커뮤니티는 커뮤니티인만큼 동호회를 개설하고, 동호회의 운영자와 운영진, 일반 회원을 구별하는 기능이나 게시판을 생성하고 삭제하는 기능 등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상황. 기획자가 메일로 문서 하나를 보내왔다. 당연히 '스토리보드'일 거라고 예상하고 열어봤는데, 스토리보드가 맞긴 맞더라. 문제는 그 분량이 대여섯 장에 불과하다는 것에 있었지.

동호회 첫 페이지는 다음 까페의 화면 하나를 캡쳐해서 넣어두고, 게시판 페이지도 다음 까페 내의 게시판 하나를 캡쳐해서 넣어놨다. 운영자와 관련된 페이지나, 동호회 탈퇴, 게시판 개설, 게시판과 회원의 권한 등 실제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 때 규정해서 줘야할 페이지들은 전혀 없었다.

사람은 자신이 예측하고 있던 범위 내에서 오류를 발견하면 그 오류를 지적할만한 여유가 생긴다. 대개의 경우처럼 일반적인 스토리보드를 받았더라면 기획자에게 추가 요청을 해서 스토리보드를 보완해가며 작업을 진행했을 터. 그러나, 예측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기획자에게 스토리보드를 보완해서 달라는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그 기획자는 스토리보드가 뭔지도 모르는 게 뻔했으니까. 그런 사람을 상대로 스토리보드의 개념정의를 강의할 수는 없었고, 그럴 여건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고? 그냥 했다. 다행히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온라인 동호회에서 놀았던 경험이 있어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어떤 페이지들이 필요한지에 대해선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부분 모자이크 처리를 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주길

스토리보드 예제(가로형과 세로형)

스토리보드는 웹 기획자가 해야할 업무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애초 이 포스팅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웹 기획자의 역할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을 스스로 정리하기 위함이라면, 이번 포스트는 사실 필요가 없다. 왜냐면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선 이견이 없기 때문이지.

스토리보드에 들어가는 내용은 뻔하다. 사이트의 모든 페이지의 화면에 들어가야할 내용들을 정리하고, 기능을 규정하고, 권한과 개념을 정리한다. 아울러 각 페이지의 제목과 네비게이션에 대한 안내도 담아야 한다. 내 경우엔 이런 내용들을 어떤 형식으로 담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반드시 가로형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도 없고, 반드시 복잡하게 번호를 매겨가며 정의할 필요도 없다고 보는게 내 입장이다. 형식이야 어찌됐건, 제작을 담당하는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만 된다면 그 외의 것은 중요하지 않다.

플로우 정의도표 (역시 모자이크 처리를 한 것을 양해해 주길)

스토리보드에서 포함되어야 할 또 다른 것은 기능에 대한 정의 혹은 전체 플로우에 대한 정의다. 이 역시 형식이나 도표를 그리는 방법 등은 중요하지 않다.

스토리보드의 첫 페이지에서 이후에 나올 박스 등의 포맷까지 규정해놓은 사례도 봤다. 사각형에 X표시를 해두면 이미지, 그물무늬는 플래쉬 하는 식으로 정의를 해두는거지. 그렇게 세밀한 부분까지 규정하는 기획자의 꼼꼼함은 대단하다고 본다. 그러나 스토리보드에서 실제 제작을 이미지로 할 것인지 플래쉬로 할 것인지까지 규정을 해둘 필요가 있을까 하는 점에선 의문을 갖고 있다. 기획자가 제작 의도를 명시해두면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그것을 어떤 기법으로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기획자와 토의를 거치면 되지 않을까. 기획자가 정의해야 할 것은 게시판의 사용 권한, 페이징 방식, 댓글 혹은 답글 여부, 게시물 번호를 붙이는 방식 같은 것이지 그걸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느냐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내 경우엔 새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라면 가능한 한 모든 페이지를 스토리보드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게시판의 경우에도 목록, 읽기, 쓰기, 고치기, 지우기의 다섯 페이지를 모두 넣는다. 매번 그럴 필요는 물론 없다. 진행 단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이 페이지는 게시판' 이라는 말 한 줄로 끝낼 수도 있는 문제니까. 결국 어떤 문서든 형식보다는 그 문서를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느냐가 관건이라고 본다.

덧글; '하루에 스토리보드 **페이지 이상은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한 마디로 '개소리'다. 하루에 스토리보드 100 페이지를 만들어내면 일 잘하는 기획자고 20 페이지를 만들면 일 못하는 기획자인가? 나중에 다시 포스팅을 하겠지만 기획자는 '문서 제작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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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free | 2007/04/15 00:10 | 인터넷 이야기 | 트랙백(1)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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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 할머니에게 웹사이트 개발 방법 가르쳐 주기 -..
이번 포스트의 주제는 우리 할머니에게 웹사이트 개발 방법 가르쳐 주기 입니다. - how to teach my grandmother to development website 입죠 현재 대한민국의 학부생 또는 청소년들이 개발자 또는 웹개발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릅니다. 후배들에게 개발자를 직업으로 추천 할 수 있을지 또한 의문입니다. 개발자의 세계가 현실 세계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과 개발자 이외의 집단이 개발자를 이해하는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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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필승 at 2007/04/17 11:02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
스토리보드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분석/정리하여, 전략을 수립하고
이러한 전략이 모두 구현(표현)될 수 있도록, 고객/디자인/개발자가 이해할 수 있게끔
전달해 주는 문서가 아닐까 합니다.
저 또한 기획자로서, 때론 업무에 쫓겨 놓치는 부분이 적지않아 있습니다.
다시금 초심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4/17 11:30
필승님/ 칭찬 고맙습니다. 저와 같이 일하는 플래셔 한 분이 최근에 '기획문서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 딴에는 보기 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닐수도 있다는걸 심각하게 깨닫는 중입니다.
Commented by aliceblue at 2007/04/30 16:17
완전 공감갑니다 ,, 가끔은 디자이너나 개발자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미지로 플래쉬로 할것인지까지 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전 굉장히 당황스러워요 --;; ㄱ그 분야의 전문가가 고민해서 좀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해달라고 일부러 남겨놓는것인데~~ 정말 이럴땐 어찌해야할지 난감 ㅎ

스토리보드도 아무리 만들고 수정해도..전 아직도 계속 빠지는 부분이 나타나더라구요..언제쯤 완벽한 스토리보드를 만들 수 있을까요? ㅠ
Commented by mindfree at 2007/04/30 17:34
aliceblue님/ 저도 계속 빠뜨리는 부분이 나타납니다.. 쩝.. 뭐 최대한 막아보려 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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